리뷰/방송리뷰

꼬꼬무시즌3 1회_형제복지원

풀잎아빠 2021. 10. 23. 17:2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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▣ 형제복지원 사건이란?

- 부산에서 아동들이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 감금되어 노동력 착취, 폭행, 학대를 당한 사건

 

▣ 꼬꼬무에 소개된 형제복지원 실화 사연

1. 정연웅 어린이(12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4년 7개월간 같힘)

- 1982년 형과함께 부산역을 따라감

- 역 앞에서 형 친구를 기다리던 중 남자 2명이 다가옴

- 길을 물어보자며 잠깐 오라고 해고, 영영 사라짐

 

2. 이혜울 어린이(7살에 끌려감)

- 1987년 1월 대전에 사는 엄마를 만나러 동생과 기차에 탐(서울에서 출발)

- 잠에 들어 부산역에 도착

- 눈을뜨니 남자들이 다가옴 

- 아저씨가 집을 찾아준다하여 따라가고 실종됨

 

▣ 2가지 사연의 공통점은?

- 아이, 남자들, 부산역

 

▣ 아이들이 남자들을 따라간 이유?

- "누구를 기다린다고 대답하니, 집에 데려다 준다고 따라오라해서 따라갔습니다"

- 그 남자들의 정체는 경찰이었고,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따라감 

 

▣ 남자들을 따라간 후 복지원에 감금된 과정

- 파출소로 데려감

- 집에 가자며 파출소 문을 열고 나가는데, 냉동탑차 같은것이 문 앞에 있었음

- 짐칸에 아이들을 넣었고, 타보니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타 있었음

- 짐칸 문이 닫히고 트럭 출발, 20분 정도 지나고 차 문이 열림

- 문이 열린 곳 밖에는 각목을 든 남자들이 소리지르며 폭행

- 그 후 머리를 강제로 자르고 머그샷(죄수들이 죄수번호를 들고 찍는 사진)을 찍음

 

꼬꼬무 방송에 나온 '머그샷'

 

▣ 첫날 형제복지원 경험담

- 이름대신 번호(연도 - 날짜 - 감금 번호)로 불림

- 옷을 벗기고 소지품 압수

- 단체복인 파란색 체육복을 입히고, 교도소와 비슷한 곳으로 데려감

- 긴 방에 2층 침대가 있고, 70~80명의 아이들이 있음

- 밖에서 문을 잠그고 감금

 

▣ 형제복지원 

- 새벽 5시 기상나팔 소리에 모두 밖으로 뛰어나감

- 밖에 나가보니 파란 체육복을 입은체 점호

- 아이 수천명, 노인, 남자, 여자 등 수많은 사람이 있음 

- 형제복지원 규모는 웅장했음, 산 중턱에 건물 수십채가 있었음

- 주위는 5~6미터의 담장으로 둘러 쌓여짐

- 담을 따라서 10미터마다 경비원 있었음 

형제복지원의 아침점호

▣ 형제복지원에서의 일과

- 거대한 공장이 있음 (피해자들의 노동력 착취를 위한 공간)

- 신발, 이쑤시개, 장난감 총 등을 생산

- 어른들은 건물을 만듬(건설)

 → 생산품 갯수가 나오지 않으면 폭행당함

 

▣ 어떤 사람들이 끌려 오는지?

- 부랑자 들이 끌려옴

- 부랑자 판별 기준

1. 지하철이나 기차 등 대중교통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간 적이 있다.

2. 기차역 혹은 버스터미널에서 TV를 본적이 있다

3. 야외 길거리에서 음주를 한다.

4. 술에 취해 술집이나 거리에서 주정을 부림

5. 몇일동안 면도를 안해 덥수룩한 수염으로 다닌다. 

- 한가지에 해당되면 부랑자

 → 부랑자의 기준 모호하여 마구잡이로 잡아감 

 

 

※ 감금중 정연웅씨의 슬픈 사연

 

1. 형제복지원에서 만난 아버지

- 감긍되고 2년이 지난 시점.

- 식당 앞에 줄 서있느넫, 멀리서 아버지를 봄

- 아버지에게 뛰어가니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있었음

- 아버지 몰골이 처참함을 확인

- 차마 아는척 할 수없어, 반가움을 삼키고 지나침

 

2. 아버지가 잡혀온 이유

- 정연웅씨가 실종된 뒤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지냄

- 어느날 술에취해 파출소를 찾아가 연웅씨를 찾아 달라며 행패 부림

- 경찰은 아버지를 부랑자로 판단하여 형제 복지원으로 보냄

 

3. 아버지의 시루떡

- 연웅씨가 형제복지원에서 걸어가는데 누가 말을 검

- 그 사람은 아버지, "밥은 잘 먹고 있지" 라고 함

- 그 후 눈치를 살피더니 손에서 시루떡을 줌

- 명절에 1인당 1개 나오는 떡을 아들에게 주려고 품에 지니고 다님

- 아버지는 식당 앞에서 잠깐 만난 순간 아들을 알아봄

 

4. 정연웅씨의 형제복지원 탈출

 

1) 동기

- 아버지가 형제복지원에 계신것을 보고 집에 갈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짐

- 희망이 없는 심각한 지옥이라고 느낌

- 이 곳을 탈출하겠다고 결심함

 

2) 탈출 과정

- 탈출 기회를 옅보다, 건물 공사 되는것을 봄

- 새로 건설하는 건물의 옥상과 담장이 가까움 확인

- 옥상에서 뛰면 담장을 넘을 것으로 생각

- 경비원이 없을 때 담을 넘고 미친듯이 달림

- 뛰다보니 철조망이 나타났고, 이를 넘음

- 담을 넘어 군인을 만났고, 군용차에 태워 길가에 내려줘 탈출

# 탈출 후 심경 : 본인을 끌고간 사라밍 경찰이라 이제 누구를 믿어야하나 혼란스러움,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: 가족과 집이 사라져 갈 곳이 없었음

 

 

5. 형제복지원으로 다시 돌아온 정연웅씨

 

-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며 숙식 해결

- 어느날 경찰이 다시 찾아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감

- 이유는 마을주민들이 부랑자라고 신고했기 떄문

 

 

▣ 세상에 드러난 형제복지원

 

1) 발단

- 1986년 12월 울산, 숲속으로 사냥에 나선 김용원검사

- 깊은 산속에서 건설하는 모습을 봤고, 수상하다 느낌

 

- 다음날 망원 카메라를 들고 다시 찾아가 사진 찍음

- 일하는 사람 옆에 13마리의 세퍼드 있음

- 경비원이 몽둥이를 들고 있음

   → 수상하다는 느낌 확신함

 

- 조용히 뒤를 밟으니, 노동자들을 축사 같은 곳에 가두는 것 확인

- 감시하던 사람들이 밖에서 문을 잠금

→ 수백명을 감금하고 일을 시키는 범죄라고 생각.

    (해당 사건은 168명이 6개월동안 울산에 형제복지원을 신축하는 현장이었음) 

 

2) 형제복지원을 찾아간 김용원 검사

 

- 형제 복지원 수사를 위해 찾아감

- 60채의 건물, 공장 교회 학교 이발소 목욕탕 등이 형제복지원 내에 있음

- 전체면적 8759평, 축구장의 4배 크기

- 수용인원 3164명, 미성년자 900명 이상

- 숙소에 철장, 자물쇠, 쇠사슬로 감금함

- 원장실 금고에 5천달러, 546만엔, 통장30개 확인 (총 20억의 금액) 

  → 횡령, 감금 및 폭행, 노동력 착취 등 중대한 범죄라 확신

 

 

▣ 형제복지원 원장 수사

 

1. 형제복지원 원장은 누구?

- 복지계의 살아있는 전설로, 전두환 전 대통령의 표창 받음

- 직업군인 출신의 박원장

- 복싱이 취미로, 은퇴 후 체육관 운영

- 당시 복싱은 가난을 탈출할 기회로 가난한 사람들 모임

  → 헝그리 복서들을 보고, 이러한 사람들을 모아 무엇인가를 하려고 결심

 

전두환 전 대통령의 표창을 받는 박인근 원장

 

2. 박원장이 형제 복지원을 만든 이유?

-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

  1) 내무부 훈령 401호

     내용 : 시설을 만들어 부랑인을 수용하라, 이들을 노동 시켜도 된다. 

     영향 : 초기 시설에 부랑인 노동력 활용, 인건비 무료로 큰 투자금 필요 없다 생각

 2) 1981년 올림픽 개최 결정

    내용 : 1981년 올림픽 개최 결정으로 거리 부랑자를 치우리고 정부 결정

    영향 : 정부 결정으로 부랑자를 공무원이 인원 모집 도와줄 것으로 생각

 

→ 초기 투자금 적고, 인원 모집은 정부 도움을 받아 시설 운영비를 받는 돈되는 사업이라 생각

 

3. 수사중 어려움을 겪는 김용원 검사

- 부산시장에게 박원장을 풀어주라는 전화 옴

- 검찰 윗선도에서 횡력액을 7억 이하로 줄이라는 직무상 명령 받음

- 안기부 직원들이 형제복지원 관련 내용 캐물음

- 사무실, 집 전화 도청 당함

- 무기징역을 구형하려는 시도 어려워짐

 

4. 수사를 막으려한 이유?

- 1987년 6월 민주항쟁

 :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터지면 정권 유지 어렵다 판단하여 윗선에서 수사 막음

→ 부산 본원의 수사 종결시킴, 울산지역 내용만 수사함

 

5. 박원장 판결 결과

- 특수감금, 횡령 혐의 기소

- 1심 징역 10년, 벌금 6억8천만원

- 2심 징역 4년 벌금 0원

- 3심 징역 2년 6개월, 벌금 없음

  : 횡령죄 일부만 인정, 특수감금 무죄 (내무부훈령 410호에 따른 정단한 직무행위로 판결)

 

 

▣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 

 

1. 박원장

- 출소 후 복지시설을 다시 개원

- 시설 이름을 바꿔 정신질환 환자, 장애인 수용

- 국가예산 꾸준히 수령

- 온천, 헬스장 등등 사업 확대

- 호주에 대규모 골프장을 개설

 

2. 감금된 아이들 

- 형제복지원 폐소 후 다른 시설로 보내짐

- 가족 찾아주려는 노력 없음

- 피해사실을 말 못함

   (형제복지원에 감금된 사실은 사회에서 부랑인으로 낙인 찍히는 일이기 때문)

 

3. 다시 나타난 피해자

- 25년후 2012년 국회 앞에 나타난 피해자 한종선씨

- "나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아이"

-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와 피해 사실을 알림

- 숨어있던 사람들이 용기를내 피해사실을 알림

 

4. 현재 진행 상황

- 피해자들이 제대로 조사해서 죗값을 받게 해달라 함

- 공소시효 만료, 2016년 박원장 사망으로 힘들어짐

- 진상 규명을 위해 피해자들이 직접 자료를 모아 가져옴

-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재조사 시작

- 과거사정리를 위한 제1기진실화해위원해에서 수사 시작

 

 

 

 

1970~1980년대는 엄청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 시대입니다.

꼬꼬무를 통해서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. 

복지원에 감금된 피해자들에게 88년 올림픽은 어떤 의미일까요..? 

더이상은 피해자분들이 아프지 않게 제대로 수사가 되면 좋겠습니다.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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